목차
1. 아호텝은 누구인가?
2. 제2과도기와 힉소스의 지배
2-1. 힉소스의 등장과 이집트 점령
2-2. 이집트 사회의 혼란과 저항 운동
3. 아호텝의 생애와 업적
3-1. 타 1세와 테티셰리 왕비의 딸
3-2. 시퀘넨라 타오의 아내, 카모세의 어머니로서 힉소스에 맞서 군사적 리더십 발휘
3-3. 내부 반란 진압
3-4. 아메스의 어머니로서 아메스와 함께 이집트 통합
4. 당시의 사회상과 여성의 역할
5. 아호텝의 유산과 평가
1. 아호텝은 누구인가?
아호텝(Ahotep)은 고대 이집트 과도기 말기(약 기원전 16세기)에 살았던 왕비이자 정치 지도자로, 이집트를 외세, 즉 힉소스인의 지배에서 해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아호텝은 '달의 신 (이아)은 평화롭다' 라는 뜻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달'이라는 단어는 남성이었다. 마법이 가득한 이 '밤의 태양', 즉 달은 종종 황소에 비교되었고 무서운 투사로 통했다. 그녀의 이름은 먼저 전쟁(이아)를 일으켜 승리를 얻어, 평화(호텝)을 누린다는 뜻으로, 그녀가 단순히 왕비에 그치지 않고 정치, 군사적으로 뛰어난 역할을 했음을 상징한다.
2. 제2과도기와 힉소스의 지배
2-1. 힉소스의 등장과 이집트 점령
이집트의 제 2 과도기란 기원전 1650년부터 1570년까지 외세인 힉소스(Hyksos)에 의해 이집트가 정치적 혼란에 빠졌던 시기를 말한다. 힉소스는 '가나안' 이라 불리던 현재의 시리아, 팔레스타인에서 유래한 셈족 개열의 민족으로, 고대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외부 정복자였다.
당시 이집트는 제 12왕조의 쇠퇴로 내부 혼란과 정치적 분열을 겪고 있었다. 중앙집권적 왕권이 약화하고 지방의 관료와 귀족이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힉소스는 전차, 청동 무기, 복합 활 등 이집트 군대보다 우수한 군사기술과 도구가 있었기에 이집트를 정복하여 지배할 수 있었다.
힉소스는 이집트 북부, 나일강 삼각지의 북동부에 있는 아바리스(Avaris)를 수도로 삼고 이집트 델타 지역, 즉 나일강 삼각주 지역을 지배했다. 이들은 외세이지만 1) 이집트 파라오의 칭호와 의식을 채택하고, 2) 이집트의 신을 숭배하고 자신들의 신과 융합하고 (가나안의 폭풍의 신 바알Baal을 이집트의 신 세트Set와 동일시함) 3) 중동, 지중해, 나일강을 연결하는 무역망을 확립하여 이집트 경제를 활성화하는 등 이집트의 행정 시스템과 문화를 이용해 통치했다.
2-2. 이집트 사회의 혼란과 저항 운동
힉소스의 지배로 인해 이집트는 북부와 남부로 분열되었고, 남부, 즉 상이집트의 의 테베 지역(현재의 룩소르)은 저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집트의 귀족과 왕족들은 힉소스에 대항해 독립 전쟁을 벌였다.
3. 아호텝의 생애와 업적
3-1. 타 1세와 테티셰리 왕비의 딸
아호텝은 테베의 왕 타 1세와 테티셰리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가문은 이집트 남부 테베 지역을 다스리던 17왕조의 핵심으로, 타 1세와 테티셰리 왕비는 테베의 독립을 지켜낸 지도자들이었다. 특히 테티셰리는 이집트 역사에서 최초로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중 하나로,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테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아호텝은 어린 시절부터 군사와 정치를 배우며 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3-2. 시퀘넨라 타오의 아내, 카모세의 어머니로서 힉소스에 맞서 군사적 리더십 발휘
아호텝은 시퀘넨라(세케넨레) 타오의 아내였다. 시퀘넨라는 '신성한 빛을 위해 용기를 증대시키는 자' 라는 뜻이었다. 시퀘넨라 타오는 해방군의 선두에 서서 힉소스인을 공격하러 나섰고, 결국 전사했다. 발굴된 미라에도 치명적인 상처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고대 비문에 따르면 아호텝은 시퀘넨라 타오의 전사 이후 테베의 지도자로서 독립 운동을 이끌었다. 전략을 세우고 군대를 직접 이끌어 이집트 군사력 회복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카모세는 '권능이 태어나다'라는 뜻으로, 창을 든 전사가 되었다. 이집트 북부의 힉소스인은 이집트 남부 , 현재 수단 지역의 누비아 인들과 동맹을 맺어 테베를 협공하려고 했다. 카모세는 북으로 진군해 힉소스인이 정복한 도시들을 되찾아 협공을 무력화시켰으나 힉소스인들의 본거지였던 아바리스는 함락시키지 못했다.
3-3. 내부 반란 진압
아호텝은 힉소스와의 전쟁 중에도 내부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하여 이집트 남부의 안정과 단합을 유지했다. 고대 비문에는 그녀가 반란군을 처단하고 나라를 보호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테베를 힉소스 저항 운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3-4. 아메스(아흐모세)의 어머니로서 아메스와 함께 이집트 통합
카모세가 사라졌을때 둘째 아들 아메스는 열살 정도였고, 아호텝이 권력을 이어받아 영토를 확장시켜 나갔다. 아모세는 '변화가 엄청난 자, 테베의 황소, 두 땅덩어리를 통일한 자, 신성한 빛(라)이 힘을 다스린다' 라는 뜻이 있었다.
아모세는 장성하고 북으로 진격하여 아바리스를 정복하고 이집트를 통일시켜, 신왕국의 첫번째 파라오, 즉 제 18왕조의 첫 파라오가 되었다. 아모세는 패주하는 힉소스인을 몰아 유프라테스 강까지 쫓아냈고, 힉소스인을 몰아낸 뒤 누비아 왕을 처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호텝은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기념비는 다음과 같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먼 변방의 연안지방(델타지역 의미)에 관해 부인에게 찬사를 보내시오. 그녀의 이름은 외국 어디서나 칭송이 자자하며,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스렸고, 지혜롭게 이집트를 보살폈고, 군대를 책임지고 감시했으며, 도망병들을 되돌아오게 했고, 반대파들을 다시 규합했고, 상이집트에 평화를 회복시켰고, 반란군을 제압했던 여왕이오'
4. 당시의 사회상과 여성의 역할
아호텝이 활동한 시기는 외세의 침략과 내부 갈등으로 이집트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이 시기에도 이집트 여성들은 정치와 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비와 여왕들은 파라오의 조언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왕이 사망하거나 부재 시 직접 통치자로 나서기도 했다. 또 종교 의식을 통해 파라오의 신성성을 지지하고, 국민의 결속을 다지는데 기여했다. 아호텝은 이러한 당시 여성의 역할을 뛰어넘어, 군사 지도자와 정치 전략가로 활동하며 이집트의 해방을 이끈 걸출한 인물이다.
5. 아호텝의 유산과 평가
아호텝와 아메스(아흐모세) 이후, 테베가 이집트의 중심이 되었다. 그 전까지 이집트의 가장 큰 도시는 상하 이집트의 중간에 위치한 멤피스였다. 테베를 중심으로 이집트 18왕조는 번영하게 되었다.
아호텝은 80여세까지 장수하며 궁정 대신들과 백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사망 후 아호텝은 테베 서쪽의 공동묘지 지역인 드라 아부 엘 나가에 묻혔는데, 1859년 발굴된 무덤에서는 아메스가 파라오로서 아호텝에게 바친 감사의 보석과 온갖 부장품이 가득했다.
특히, 금으로 만든 단검, 금박을 입힌 도끼, 황금파리 세마리 가 발견되었는데, 황금 파리는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친 장군이나 병사에게 상으로 내렸던 물건이었다. 이 부장품들은 아호텝의 전사로서의 활약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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